서당과 서원에 대하여


조선시대의 서당은 일반적으로 초등교육을 담당하던 사설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해방 이후까지 마을에서 초등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의무교육기관이 발달함에 따라 서당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서당에서 공부한 후 향교에 들어가 중등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서당에서 직접 중등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당 교육의 실질적 목표는 글자를 해독하고 학문의 기초적인 소양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책은 가장 먼저 천자문을 배우고 그 다음으로는 동몽선습, 명심보감, 통감, 소학, 43, 사기 등 차차로 심화 학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천자문으로 문자 공부를 하고, 소학에서는 성리학적 실천규범을 익혔습니다. 박세무가 지은 동몽선습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배우고 천자문을 끝낸 아이들에게 유교적 도덕과 역사를 배웠습니다.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는 실제 사물과 직결된 실자 위주로 편찬하여 한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술로는 5언 절구, 7언 절구 등으로 시를 지었고, 습자는 해서를 쓴 다음 행서나 초서를 익혔습니다. 서당식 교육방법은 책의 내용을 읽고 암송하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형태였습니다. 능력별 수업도 가능하여 학생들의 개인차를 존중하였으며 진도를 따라 잡지 못하는 학생은 보충학습으로 글을 익힐 수 있도록 지도하였습니다. 지도를 해도 성적이 나쁘거나 행동이 바르지 않은 학생에게는 회초리를 치는 초달로 훈육하였고, 성적 우수자에게는 상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서당에는 훈장, 접장, 학도가 있었는데 훈장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학문은 훈장마다 달랐다고 합니다. 접장은 서당을 먼저 다닌 학생으로 조교 역할을 하였습니다. 학도는 일반 학생으로 훈장과 접장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서당 교육은 소규모 교육기관으로 학문적으로 가르칠 능력이 되면 누구나 세울 수 있었습니다. 입학 퇴학도 자유롭고 공부하는 시간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서당 교육은 학생의 능력에 맞는 개별학습의 무학년제로 현재 우리 초등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또 유교적 이념을 일반 서민에게까지 전달하여 유교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원은 중종 2년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입니다. 백운동서원은 명종 때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는 간판과, 서적이나 노비, 토지 등을 하사받았습니다. 서원은 국가에 공이 있거나 유교의 성현을 모시는 사우의 기능과 학생을 가르치는 사설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설립 목적이 제사를 지내고 성현 군자 양성에 있었으나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중등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균관이나 향교가 문묘를 배향하는 곳이라면 서원은 한 사람의 명유와 공신에 대해 제사를 지냈습니다. 서원은 국가에서 사액서원으로 지정되면 토지, 노비, 서책 등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립교육기관이므로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학풍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인조 때에는 서원이 너무 많아져서 허가제로 하였으나 별로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학문적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변질되어 정권 다툼하거나, 군역이나 부역을 회피하는 것, 당쟁의 온상 등의 폐단이 있자 대원군은 많은 서원을 철폐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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