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봉 국제배드민턴대회에서 일본천하를 만들다.

박주봉 국제배드민턴대회에서 일본천하를 만들다.

  박주봉은 2001년 세계배드민턴연맹이 선정하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한국선수이다. 국제대회 총 72회의 우승에 빛나는 박주봉은 1991년 최다우승자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2003년 말레이시아에서 잠시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2004년 부터 일본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일본 배드민턴 황금기를 이끌고 있다. 박주봉 감독은 누구인지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국가대표 선수시절>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국가대표가 되어 국제대회에 나간다. 최연소 국가대표이다. 배드민턴 한일전에 고교 1학년 선수가 1번으로 출전하자 일본은 항의한다. 원래 1번은 그 팀의 에이스가 출전하는 것이 관례인데, 일본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결과 고교 1학년 박주봉은 일본 선수를 2대0으로 싱겁게 이겨버린다.


경기 결과를 보니 일본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실력있는 에이스였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렇게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72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다. 국내 경기에서는 106회나 연승하며 적수가 없는 선수였다. 

<올림픽 금메달>

  그러다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배드민턴이 정식종목이 된다. 그때 결승전에서 김문수와 함께 15대 11, 15대 7로 여유있게 금메달을 목에 건다. 이후 학업에 전념하다가 협회의 요청으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협회는 심은정 선수와 혼합복식을 추천하지만, 박주봉은 라경민을 파트너로 추천한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라경민과 출전을 한다. 결승전까지 진출하여 우리나라 선수끼리 금메달을 놓고 다툰다. 결국 김동문 길영아 선수에게 지면서 은메달을 차지한다. 심은정 선수는 은퇴하게 되고, 박주봉 선수는 입장이 난감해졌다. 그래서 박사도 순천향대에서 마치고, 해외에서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감독으로 2019년 배드민턴 국제대회를 일본천하로 만들다.>

  2019년 배드민던 세계선수권에서 일본은 금 2, 은 3, 동 1개를 따냈다. 대부분 선수들이 20대 초반인데 앞으로 배드민턴은 일본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된 국제경기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올림픽에서 일본이 배드민턴에서 메달을 많이 딸 것으로 보인다.


  박주봉은 일본 선수들에게 체력과 정신력 훈련을 함께 시키며 기술과 승부욕을 심어 주었다. 특히 정신력을 강조하여 선수들을 격려하여 일본 배드민턴의 중흥기를 이끌고 있다.  현재 일본 언론에서는 박주봉 감독을 배드민턴의 신 즉 <가미사마>로 부른다고 한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어 선수들은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2회연속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배드민턴은 원래 한국이 일본보다 한수 위였는데 이제는 일본을 두려워할 처지이다. 이게 박주봉 감독의 지도력이 아닌가 싶다.


  일본 생활을 마치고 나머지 인생은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배드민턴을 다시 한번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경색 관계이지만 스포츠 만큼은 이런 관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선의의 경쟁을 하며 함께 경기력을 향상시켰으면 좋겠다. 정치와는 별개로 일본 국가대표 감독으로 집중하고 싶다는 그의 바램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 마음 한쪽에는 뭔지 모를 꺼림칙한 감정이 있다. 만약 올림픽에서 만났다면 한국 선수가 일본을 이겼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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