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와 카스트제도

마하트마 간디

간디는 인도의 비폭력주의의 대표적 인물이다.

또 다른 이면에는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농민 폭동을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고

특히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고자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간디와 앙숙이었던 불가촉천민 출신인

암베드카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인도 헌법을 만든 초대 법무부 장관이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사회적인 차별은

분노했지만 카스트제도는 옹호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당연히

카스트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가촉 천민들에게는 피눈물 나게 만든

인물이 바로 간디이다.


간디는 카스트 제도를 옹호하며

카스트제도가 인생의 법칙이며

카스트의 법칙이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1932년 드디어 암베드카르의 주장대로

영국 식민정부는 불가촉천민을 위한

분리선거구제도를 실시하려고 했다.


일반인과 불가촉천민이 함께 선거하면

불가촉천민이 당선될 가망성이 없기 때문에

의회가 대표성을 가지려면 불가촉천민도

의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암베드카르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 간디는 분리선거구 도입을

결사반대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을 벌인 것이다.

이 단식투쟁으로 분리선거구제도는

없던 일이 되었다.


무슬림 연맹이 포용을 요청했을 때에도

간디는 수락하지 않아,

결국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다.


노동자나 농민들을 위한 법이나 요구는

거의 들어주지 않고

지주나 기업가들의 요구는

대거 들어주는 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간디가 정치적인 인물이라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농민들의 폭동을 항상 걱정하면서도

지주나 기업가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군이 더 필요하게 되자

간디는 인도의 젊은이들에게

자원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인도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7만 5천명이 죽고,

7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여지껏 간디의 비폭력 주의 등

좋은 점만 알고 있던 나는

카스트제도의 불가촉천민들의

처절한 삶을 모른채 했다는 것이

참 의아하다.


하지만 비폭력과 인도 독립을 위해

애쓴 업적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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